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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농담을 던지는 작가, 김지숙

파이플이 만나본

by 김사슴_ 2019. 7. 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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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작가를 만나기 전, 그의 희곡집을 읽었다.
위트있는 캐릭터와 내면의 그늘, 침울한 상황에도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인물들, 

들을 둘러싼 애처로움.


서면의 한 카페에 밝게 웃으며 나타난 김지숙 작가.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연극에 대한 소중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김사슴 

이번 부산연극제 작품 <클로즈업>, 엄청 재밌게 봤어요. 매년 새로운 작품을 쓰시는 게 정말 놀라워요.

 

김지숙 

희곡 쓰는 분들은 다들 그렇게 쓰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다만 발표할 기회가 많이 없으셔서.

 

김사슴 

계속 새로운 작품을 쓰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지숙 

작품의 원동력은 청탁? (웃음) 농담이구요. 제가 좀 늦게 희곡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연극은 되게 어릴 때부터 시작했었지만.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다시 부산 에 내려와서부터였어요. 저는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했어요. 근데 결국은 희곡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연극이 제 마음의 출발지였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글쓰기와 연결시킨 지점이 희곡이었던 것 같아요. 또 저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서 연극과 희곡이 서로 다른 분야가 아니더라고요. 제 마음의 방점을 연극에 두고 있어서 희곡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01. 연극에서 희곡으로

 

김사슴 

스무 살 때 바로 연극을 시작하셨어요?

 

김지숙 

1992년, 20세기에 (웃음) 배우로 출발했어요. 중앙동 시절가마골 소극장에서 <오구> 초연할 때, 문상객2로. 연극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제 평생의 자양분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때 22살이었는데 그땐 연극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울 건 없다 싶었고.


김사슴 

현장에서 배우겠다! (웃음)


김지숙 

네네, 그래서 거의 학교도 안 나가고 극단에서 살았어요. 조그마한 다락방이 하나 있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포스터 붙이러 다니고 밤에는 연습하고. 그때 그 기억들이 제 마음을 지배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와서 집을 구할 때도 그 추억 때문에 중앙동 근처에 집을 얻었죠.


김사슴 

대전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셨다는 기사를 봤어요.

 

김지숙 

2000년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대전엔 작은 오빠가 있어요. 처음엔 몇 달 좀 쉬다오려는 생각에
갔다가 정착하게 됐죠. 거기서 대학원도 진학하고. 원래 시나리오는 꾸준하게 쓰고 있었어요. 부산에 있을 때도 영화화되기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고. 대전에서 영화 만들 기회가 있어서 단편영화 사업을 계속했었죠. 좋은 기회가 와서 메이저 쪽에서 영화화 될 기회가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 또 직전에 엎어지고. 낙향한 거죠, 뭐. (웃음)


이제는 부산에 와서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내려와서 보니 그 시절에 연극하셨던 분들이 서울로 가시거나 많이 안 계셨어요. 마침 김문홍 선생님께서 희곡 강좌를 여신다기에 선생님을 뵙고 싶어서 그 수업을 들었어요. 김문홍 선생님이 저를 알아보셨던 거죠. 그렇게 예전 이야기도 하고. (웃음) 소극장 협의회에서 낭독공연 대본을 공개모집을 했었는데 그때 제가 선택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02. 그리고 더블스테이지


김사슴 

지금은 극단 더블스테이지랑 계속 작업을 해오고 계세요.

 

김지숙 

네. 당시 연극 협회에서 하나의 테마를 정해서 연출가와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작가로, 극단 더블스테이지의 김동민 대표는 연출가로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 <파이플>에 연재하고 계시는― 김지용 선생님께서 김동민 대표와 연결시켜 주셔서 처음 작업을 하게 되었죠.
제 작품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김동민 대표가 겁을 먹었었다고 하더라구요. 뭐, 이런 작품이 있나 싶은. (웃음) ‘피가 튀고 살이 튄다.’ 이런 문장이 있으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고. 그렇게 한 작품 하다보니까, 묘한 끌림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김동민 대표 표현으로는. 그래서 계속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는 의뢰를 받고 함께 하게 되었죠.

 

김사슴 

더블스테이지와 <라랄라 흥신소>로 부산연극제에 나가셨죠?

 

김지숙 

네. 동민 연출도, 저도 부산연극제에 처음 나갔던 작품이죠. ‘연극제에 어떤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상을 타기 위한 보편적인 틀이 생긴 것 같다. 연극제에서 상을 타서 전국 연극제에 나가는 기반으로 삼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으면 어떻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서로 했죠. 연극제가 끝나고 나서도 재공연 할 수 있는 작품을 한 번 만들어보자 했더니 동의하더라고요. 그래서 <라랄라 흥신소>가 나오게 됐어요.


이 작품이 부조리극이라서 일반적인 연극과 다르기도 하고. 호불호가 좀 있었어요. 기존 심사위원분들이나 연로하신 선생님들은 ‘이게 뭐야’ 이런 반응도 있으셨고. 저희 작업을 예쁘게 봐주시는 선생님들은 또 ‘새로운데? 도전적이고 좋은데?’ 하시고. 다행스럽게도 관객들은 되게 좋아했어요. 그렇게 더블스테이지와 출발했어요. 그런데 ―저희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 뒤부터는 연극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더라구요.

 

김사슴 

이번 연극제 카탈로그에도 ‘이번에도 수상은 물 건너갔다.’ 이런 멘트가 있던데. (웃음)


김지숙 

하하하. 맞아요. 동민 연출이 물어보더라구요. 이렇게 적을까? 하고. 그래서 ‘그래 적어~ 반은 진심이잖아.’ (웃음) 저희가 이번 연극제가 여섯 번째거든요. 나올 때 마다 연기상은 거의 다 받았어요. 남자배우상, 여자배우상, 여자신인상, 남자신인상… 작품마다 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연출 같은 경우에는 한 번도 수상을 못했어요. 연출상에 항상 아쉬움이 있으니까. 누나, 이번에도 물 건너갔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죠. (웃음)

 

김사슴 

많은 작품 중에 생각 외로 쉽게 쓰였다던가. 아니면 정말 힘들었다, 이런 작품이 있을까요?


김지숙 

네. 좀 쉽게 쓰였던, 하루 만에 썼던 작품이 <열렬한 청취자>이었어요. 거기 나오는 캐릭터 중에 오지랖이라는 캐릭터가 저예요. 저는 정말 오지랖이… (웃음) 항상 궁금해요. 옆에서 뭔가를 말하고 있으면 그 다음이 궁금해고. 이야기 자체가 픽션이지만 제가 실제로 경험한 ―서울에서 공연을 보고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내려올 때― 상황이었거든요. 어떤 남자분이 칸막이 문을 팍 열면서 통화를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앉아있는 승객석을 바라보면서 한 3분 정도? 그 자리에 딱 서서.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한 거예요. 또 가만히 들어보니 통화에 어떤 줄거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칸으로 가시는 거예요. 뒷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데. 그래서 따라갈 뻔 했어요. 그때 문득 정말 통화를 하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그 분의 인상이 되게 쓸쓸해 보였어요. ―과장된 상상력이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주길 바랬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당시에 한창 ‘소통’이라는 주제가 유행하는 시기였고 평소 그 주제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소극장 협의회에서 낭독공연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하루 밤 만에 썼어요. 초고를. 마침 선택이 돼서 공연까지 하게 됐구요.

 

김사슴 

아, 그럼 반대로 힘드셨던 작품은요?

 

김지숙 

2010년에 공연했던 <나비>라는 작품이 힘들었어요. 병자호란에 인조와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풀려난 우리 백성들, 그리고 거기서 나온 환향녀에 대한 얘기인데. 제가 그걸 쓰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일단 ‘환향녀’에 대한 것과 그 시대 자체가 역사적으로 굉장히 아픈 시기잖아요. 너무 아파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대면하고 적어야 했을 때, 정말 힘들더라구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군주로서 했던 비겁한 행동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싶 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김동민 연출이 해석을 저와 좀 다르게 했었죠. 소현세자와 아버지 인조 사이의 부성애로요.


저는 연출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창작 장르. 저희는 작업할 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연출이 하고 싶은 방향에 대해서 사전에 긴밀히 의논을 해요. 그런데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배우들이 연습을 시작하고 연출적인 요소 작업에 들어가고나선 거의 개입을 안 해요. 연출의 방향을 지켜주고 싶어서요. 이미 사전에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그런데 <나비>의 경우에는 서로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해서 그게 좀 아쉬웠어요. 다음에 혹시 재공연 기회가 오면 연출과 긴밀히 의논해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요. 아쉬운 마음에. (웃음)

 

 

 

#03. 농담을 쓰다, 슬픔을 쓰다

 

 

김사슴 

희곡집 작품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밝고 재기발랄한 캐릭터가 내적인 어둠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어두운 상황임에도 밝고 재미있는 대사로 극이 진행되더라고요. 밝음과 어둠이 서로 잘 어우러진달까요. 극작의 여러 요소 중에서 작가님께서 중심으로 두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김지숙 

며칠 전에 작품을 한번 세어봤어요. 17개,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제 작품을 보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가 슬픔이에요. 이 슬픔이라는 게 눈물 흘리는 슬픔일 수도 있고, 어떤 처연함일 수도 있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으로 농담을 즐겨하는 편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서, 그리고 표현 방법은 농담이에요. 유머감각. 유머와 농담의 표현이 슬픔을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또 상대적인 스산함을 더 크게 느껴지게 만들거든요. 제가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게 안보이시겠지만 제가 되게 웃겨요. (웃음) 저 되게 재밌는 사람이에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저는 농담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대하는 방법에 유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저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해요. 슬픔을 잊는 방법이 아니고 슬픔을 그대로 정면으로, 정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법으로 유머를 택하면 훨씬 더 잘 보이게 만들 수 있어요. 저는 항상 농담으로 표현해요.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김사슴 

처음엔 그저 재미있다가 어딘가 자꾸 짠한 거예요. 자기들끼리 농담하고 밝은 분위기지만, 오히려 더 슬픈.

 

김지숙 

네, 그래서 더 안타깝죠. 예술이 강자를 이야기하는 장르가 아니거든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연극이라는 장르는 그 부분이 더 강해요. 연극은 그 시대의 약자에 대한 이야기, 그 본질에 다가가는 장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이하 중략)

 

 

 

- <파이플>2019년 봄, 발아하다 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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