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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극작가 탐구] 베르톨트 브레히트

Play, 희곡

by 김사슴_ 2019. 7. 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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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용

 

 

브레히트(그림_조림)

 

세계대전 후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 연출가

 

1898년 2월 10일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출생한 브레히트는 현대 연극의 흐름에 있어 주요한 영향을 끼친 극작가, 연출가이자 이론가라 볼 수 있다. 그는 연극이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역할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힌 견해, 즉 ‘공포와 연민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경험’이라는 연극의 목표에 반기를 든 극작가이자 연출가의 삶을 살았다.


근대 이후 연극 예술의 존재가치에 대한 고민은 여러 방면에 걸쳐 진행되었다. 특히 텔레비전과 영화 등 영상 매체와 기술의 발달은 연극만의 두드러지는 특성인 ‘이야기하기’를 잠식했다. 게다가 영상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연극무대의 판타지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이에 많은 연극 예술인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연극의 변화를 이끈다. 어떤 이들은 무대가 가지는 현장성에 집중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했다. 배우의 정서를 관객에게 좀 더 내밀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낸다.

 

브레히트는 무대와 객석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객관성에 주목하였다. 연극의 관람 형태는 결국 3인칭의 시점을 가진다. 본질적으로 무대와 객석은 분리되어 있고 행위자와 관찰자가 엄연히 나눠져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관점에 의하면 관객 자신을 극중 인물과 동일시 여기게 만드는 연극은 순간적인 마취제에 불과하다. 연극을 통해 진실을 발견해야 하고, 그 진실이 카타르시스가 되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연극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야 했다.

 

이처럼 입장할 때의 관객과 공연을 보고 난 후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은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연극 예술의 역할이 결국 무엇으로 귀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료한 답변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변화를 이끄는 기폭제다. 기존의 많은 연극들이 개인적 감정이나 정서에 영향을 주었다면 브레이트의 연극들은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개인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대사회적 발언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대신 예술적 은유로써, 또한 객관적 사고에 의한 관찰과 탐구로 호소하는 것이다.

 

 

 

멀리서 보기

 

브레히트는 극작가, 연출가이면서 연극 이론가이기도 했는데 연극공연을 사회나 이데올로기의 토론장으로 만들기 위해 참여자들이 극중 상황에 몰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된다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받아들인 마르크스주의자인 브레히트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진보성을 부정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하나의 연기방법론을 고안해냈는데 그것이 ‘멀리서 보기’이다. 용어가 유입된 경로에 따라 ‘이화효과’, ‘소외효과’로 불리기도 한다. 핵심은 연극 행위가 진짜가 아니라 만들어진 상황을 연기하고 있음을 인식,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성으로 판단할 것을 주문한다.

 

이런 방법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의 희곡과 연극들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 아님을 자각시키는 여러 장치들을 심어 놓았다. 주인공이 슬퍼해야하는 상황에서 해당 배우로 하여금 밝은 느낌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든지, 전쟁 장면을 마치 흥겨운 무도회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다. 때로는 공연 중에 자막으로 ‘이것은 연극일 뿐입니다. 낭만적 감상에서 빠져나오십시오’ 라고 띄우거나, 사회자가 극에 개입해서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건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동시에, 연기자 역시도 자신이 해당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해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과 부조리를 새롭게 새기고 개선책을 서로 토의하게끔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믿었던 변증법적 유물론은 브레히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서사극을 이끈 셈이다.

 

브레히트의 희곡은 주로 본인이 직접 창작한 것이라기보다는 존재하고 있던 설화나 이야기를 근거로 재구성, 창작된 것들이 많다. 멀리서 보기 위해서는 주변의 친숙한 것들보다는 먼 나라 다른 얘기를 들고 와서 비유해내는 것이 용이했던 탓이다. ‘서푼짜리 오페라’, ‘코카서스의 백묵원’, ‘사천의 선인들’ 등 브레히트의 이름을 거론할 때 나오는 희곡작품들은 거의가 그의 터전과는 다른 곳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극이론을 지탱하기 위해 구성 자체가 굉장히 산만하다. 등장인물도 많고, 노래, 시, 춤 등이 발작하듯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많은 연극연출가들은 브레히트의 희곡을 다시 각색한다. 그러다보면 서사극적인 요소가 많이 희석되어 버리게 되고,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 공연의 경우처럼 자식들이 전쟁 통에 죽음을 당해 가지게 된 상실감을 너무도 절절하게 표현하는 배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감응해서 관객들은 눈물을 펑펑 흘린다. 브레히트가 살아서 보았다면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또한 어떤 공연은 장면전환의 미숙함, 연습의 부족 때문에 야기된 저질적 완성도의 핑계로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부끄럽고, 곧 들통이 날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지 못하는 건 비슷한 일이긴 하다.

 

 


현대예술에 스며든 서사극

 

브레히트는 그리 안정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 나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었고, 세계대전 후 미국 내에 매카시 열풍이 불던 시기, 패망한 독일의 연극인으로서 스위스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동독으로의 정착을 선택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였기도 했지만 그의 연극적 이상을 펼쳐줄 베를린 앙상블이 동독에 위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독에 돌아와서 관료주의에 물든 현실을 개탄하고, 동독 정부의 인권 탄압을 비난하는 등의 활동도 했지만 대부분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 1956년 8월 14일, 심장병으로 그 삶을 마감하였다.


브레히트의 연극과 그 기법들은 오용되기 쉬운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연극은 연극뿐 아니라 예술이 변화하고 진보하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브레히트의 흔적들이 스며있다.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배우 김상중 씨의 독특한 억양으로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 형태는 서사극과 매우 흡사하다. 일어난 사건과 그 사건을 바라보며 진실을 찾아 풀어나가는 기법은 논픽션이지만 극적 구성을 가진다. 우리나라 사극 중간 중간에 나오는 진지한 어투의 내레이션 역시 서사극의 기법에 속한다. 음성이 들리는 순간 확 깨지만 언제 어디서 벌어진 어떤 사건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주인공인 장그래가 자신의 속내와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내레이션이 종종 나온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관행들 때문에 상처 입은 장그래를 지켜보며 시청자들이 분노와 동정을 느낄 무렵 장그래 역을 맡은 임시완의 차분한 목소리는 흥분을 멈추게 한다.


극장으로 돌아와서 공연 쪽으로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우선 극작 부분에서 서사극의 보편화가 눈에 띈다. 피터 셰퍼가 쓴 ‘에쿠우스’의 다이사트,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는 극중 인물이면서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진행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연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존 필미어 작 ‘신의 아그네스’의 리빙스턴도 마찬가지다.


신경향 희곡으로 각광받는 버바텀 플레이도 브레히트의 연극적 유산을 물려받고 있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관련자들의 인터뷰, 기사, 증언으로만 이루어진 텍스트는 그야말로 관객들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여러 각도로 사건을 관찰하게 하며 진실을 추론하게 만든다.


카메라로 치면 프레임에 해당되는 프로시니엄의 개념을 걷어내어 장면전환, 무대장치를 완전하게 노출시키는 연극이 있다. 이른바 극장주의 연극이다. 이 연극들은 텍스트는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표현하는 기법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항시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브레히트는 지성에 의한 관객의 변화와 세상의 혁신이라는 연극적 이상을 가진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것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그 길을 제시하였다. 보통 예술작품이란 미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담보하고 있다. 하지만 내재된 의미의 발현, 사회를 향한 발언 등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역시 예술의 기능 중 하나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지용 극작·연출가

 

연출가이자 극작가. 극단<프로젝트팀 이틀>의 대표이자 현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 
수많은 상을 받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희곡집 <그 섬에서의 생존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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