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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극작가 탐구] 피터 셰퍼

Play, 희곡

by 김사슴_ 2019. 7. 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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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용 

극작가/연출가

 

 

피터 셰퍼(그림_김사슴)

 

현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타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2016년 그의 부고가 알려지자 전세계의 수많은 연극인과 영화인들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현대의 연극인 중에서 가장 성공한 극작가이며, 연극,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상을 받았고, 더불어 부와 명예를 거머쥔 최고의 작가이다. 영국 리버풀 태생이었지만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73년 영국 내쇼널 씨어터에 의해 초연된 <에쿠우스>로 명실상부 세계적인 극작가로 발돋움하였다. 희곡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작품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작품에 잘 받아들여 영화의 각본으로까지 확장되었다. 1979년 런던 올리비에 극장에서 초연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듬해 미국 뉴욕 브로드허스트 극장에서 1181회 상연된 <아마데우스>는 1984년 영화화되어 세계적인 흥행을 하였다. 물론 8개 부문에 걸쳐 아카데미상을 석권했다. 1987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고, 2001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우리나라에서 극작가로서 피터 셰퍼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수많은 외국 극작가의 작품이 상연되었지만 유독 피터 셰퍼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1975년 실험극장에 의해 공연된 <에쿠우스>는 6개월 간 지속되었다. 당시 4~5일 정도 공연하고 막을 내리던 우리나라 연극 풍토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고, 이후 연극단체들은 단기적 공연 발표의 관행에서 벗어나 레퍼토리 공연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에쿠우스>의 주인공 알런 역을 맡았던 젊은 배우들은 대중적 스타가 되어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진출했고, 이어진 공연에서 누가 그 배역을 맡을 것인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다.

 

 


인간 존재에 관한 성찰


대표작인 <에쿠우스>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인간소외, 제도의 폭력, 맹목적 신념이 충돌하는 일종의 싸이코 드라마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알런이 극 중에서 행한 말의 눈을 찌른 행위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극작을 한 피터 셰퍼는 소년의 심리를 다각적, 심층적으로 해부하고 그 결과로 평온한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던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제시한다. 교육을 통해 우리는 개성을 점차 잃어가며 같은 모습을 갖추기를 강요받고 있으며, 경제활동에 필요한 인력으로 사육되고 있으며, 그 와중에 가족은 중심을 잃고 점차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근대까지 우리의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종교는 이제는 무력하다. 알런이 압박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선택한 욕망과 쾌락은 전통적 규범과 내부의 양심으로 인해 오히려 고통으로 변한다. 부모도, 여자친구도 세상 그 누구도 알런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래서 알런은 친구이자 신의 모습이었던 말의 눈을 찌른다. 그의 실존은 고립인 것이다. 관계를 끊음으로써 스스로를 구한 것이다.


탄탄한 극적 구성을 지니고 있고,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리듬감도 희곡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무난한 연출이라면 희곡을 잘 재현하기만 해도 무대와 객석을 장악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피터 셰퍼의 비범함은 주인공의 내적 세계를 묘사함에 있어 연출의 도전을 허용한 데에 있다. <에쿠우스>의 극작기법은 리얼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심리적 묘사가 들어가야 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표현주의적이다. 작품에 임하는 연출은 말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난다. 어떤 연출은 말들에게 격렬한 움직임을 부여했고, 또 어떤 연출은 노래나 음성을 활용하기도 했다. 다른 장면은 몰라도 비현실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는 각 공연팀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에쿠우스>는 풍성해졌고, 다양한 연출만큼 다양한 층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아마데우스>는 훨씬 구체적인 갈등을 다룬다. 타고난 천재와 노력하는 보통사람의 대립을 통해서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지 되묻는다.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하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궁전을 배경으로 괴팍한 성격의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의 음악과 각고의 노력 끝에 궁정작곡가가 된 살리에리의 질투가 빚어내는 이야기다. 실제 역사와 다소 다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인간의 악한 본성인 시기, 질투, 교만을 잘 다루어 대중의 공감과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 내었다.


두 작품 모두 서술자를 두는 기법을 택하였다. <에쿠우스>에서는 알런을 상담하게 된 다이사트 박사가, <아마데우스>는 먼 훗날의 살리에리가 연극이 진행되는 사이 틈틈이 전지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극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부연한다. 이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기법을 도입해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해 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두 작품 공히 주제와 초점을 밝히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원래 연극이 인간의 이야기긴 하지만 피터 셰퍼는 피상적인 사건보다는 인간 존재, 본성을 건드린다. 선한가, 악한가부터 시작해 관계, 실존을 지나 신과 인간까지 다룬다. 결론에 이르면 그래서 결국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마주하게 된다. 어떤 대답이든 치열한 고민을 유도하고, 개인과 세계, 인간과 제도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비교적 초기 작품인 <블랙코메디>는 풍자적인 요소가 강한 연극인데, 그 내용보다는 공연의 형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다. 이 연극은 극장의 조명이 켜지면 등장인물들은 암흑이 되고, 극장의 조명이 아웃되면 극 속의 세상은 다시 밝아지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보이는 곳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는 행위들이 인간이 지닌 허위와 기만, 거짓과 진실에 대한 물음들을 제시한다. 단순화시켜 본다면 결혼소동이지만 이러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서도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살필 수 있는 작품을 써낸 피터 셰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다. 얄팍한 속임수로 말초적인 감각만을 건드리는 시시한 작가들을 단번에 오징어로 만드는 희곡일 것이다.


말기 작품에 해당하는 <고곤의 선물>은 10년 전 쯤 대학로에서 구태환 연출로 공연된 것을 관람한 적이 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어쩌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 역시 피터 셰퍼의 작품답게 죽은 작가의 아내의 기억으로 서술되고 있다. 죽은 작가 에드위드의 아내 헬렌은 피와 복수를 추구하는 작가의 작품을 곁에서 조언하면서 걸작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진짜 의도를 숨긴 것이었고, 그래서 조언의 결과들을 제거하자 걸작은 졸작으로 바뀌어 버린다. 신화와 현실을 교차하면서 진행하는 작법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예술의 기능과 예술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작가의 의도가 먼저인지 아니면 관객이 원하는 것이 먼저인지, 예술은 개인의 표현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기호로써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담론을 펼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예술의 곁에서 예술을 돕기도 하고 집어삼키기도 하는 매니지먼트에 대한 부분들, 예술행정과 지원제도에 관한 고민까지도 이르게 하는 작품이었다.


물론 피터 셰퍼는 영리한 작가이고, <고곤의 선물>에 등장하는 에드워드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였으며, 항상 대중의 사랑과 선택을 받아온 그의 입장에서는 온갖 저작권과 자본의 간섭 속에 자리하게 된 자신의 위치가 어쩌면 개탄스럽기도 했을 것도 같고,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적 환경이 혐오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확실히 작가로서 피터 셰퍼는 롤모델로 삼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훌륭한 작품을 집필했고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들이 상연되고 있다. 관객에 구미에 돋는 작품들을 써냈지만 인간에 대한 의문과 성찰을 놓치지 않았다. 일상 속의 균열을 포착해내는 데 비범한 재주를 지니고 있고, 대중의 공감과 보편성을 획득해 내었다. 그의 인생과 작가적 행보는 마치 현대의 셰익스피어 같다.

 

단지 <고곤의 선물>에서 느껴진 묵직한 고통은 그가 사실은 이오네스코나 사라 케인(영국의 극작가, 2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도 감각적이며 비윤리적인 희곡을 썼다)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의 글쓰기의 지향점이라든가 한계, 혹은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쓸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피터 셰퍼는 자신을 살리에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김지용 극작·연출가

 

연출가이자 극작가. 극단<프로젝트팀 이틀>의 대표이자 현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 
수많은 상을 받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희곡집 <그 섬에서의 생존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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