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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극작가 탐구] 장 밥티스트 라신과 피에르 코르네유

Play, 희곡

by 김사슴_ 2019. 7. 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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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라신 (Jean Baptiste Racine:1639~1699),

그리고 피에르 코르네유 (Pierre Corneille:1606~1684)

 

 

글   김지용

극작가/연출가

 

(좌) 장 밥티스트 라신 (우) 피에르 코르네유

 

신고전주의 비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94-1616)가 워낙에 유명했기에 그의 명성에 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왜소해 보이는 극작가들이 있다. 이를테면 영국의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1564-1593), 벤 존슨(Ben Jonson:1572-1637), 프랑스의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1606-1684), 장 밥티스트 라신(Jean Baptiste Racine:1639-1699) 등이다. 이 중에서도 라신과 코르네유는 몰리에르(Moliere:1622-1673)와 더불어 프랑스의 위대한 3대 극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라신은 프랑스 시골의 평범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곧 어머니가 죽었고 3살 때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고아가 된 라신은 할머니를 따라 수도원 생활을 하였는데 이 수도원은 엄격한 금욕, 은둔으로 유명한 장세니즘을 신봉하는 학자들과 교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었다. 라신은 이곳에서 성장하면서 라틴어 지식과 문학적 소양을 쌓았으며 우울하고 염세적인 신학도 흡수했다. 하지만 젊었던 그는 시골에서의 목가적인 삶을 본인의 인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나 보다. 결국 학업을 핑계로 화려한 파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 라신의 형편과 환경에서 가장 빠른 성공의 길은 희곡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장기에 관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금욕주의의 신봉자들이었기에 무대라는 화려한 가상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을 거짓이라 부정하였다. 라신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 결별한 후 뒤돌아보지 않고 성공을 향해 달린다.

 

파리 생활 초반에 몰리에르와 교류를 했지만 연극적 취향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몰리에르의 작품 세계는 희극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라신은 연극은 거의 대부분 진지하고 엄격했다. 불만이 쌓여가자 몰리에르에게 준 희곡을 다른 극장에서 공연하였고, 게다가 몰리에르 극단의 인기 여배우와 연인이 되어 그녀를 빼돌렸다. 이로 인해 라신과 몰리에르는 절교한다.

 

그러나 라신의 성공가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앙드로마크(1667)> 이후로 라신은 작품마다 제도와 법칙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비극적 인물 유형을 만들어내는데, 당대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뛰어난 극작 솜씨였다. 이상과 현실, 양심과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주인공들은 당시 관객들에게 무차별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고, 그 보답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귀족으로의 신분상승, 명예였다.

 

<브리타니쿠스(1669)>, <베레니스(1670)>, <바자제(1672)>, <미트리다트(1673)>, <이피제니(1674)> 등 발표하는 희곡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페드르(1677)>는 완벽한 형식을 갖춘 5막 비극으로써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연극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페드르> 이후로 라신은 극작을 하지 않았다. 말년에 지인의 부탁으로 종교극 몇 편을 적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작품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1662년부터 1677년까지 15년 간 희곡을 집필해서 이러한 업적을 쌓은 셈이다. 1674년 출납관이 되어 귀족의 반열에 오른 후 1690년 황제의 침실에서 일하는 시종이 되었으며 1696년에는 장관의 자리에까지 이른다.

 

라신의 인생은 경쟁과 승리로 요약된다. 라이벌이었던 코르네유와 늘 경쟁했고, 심지어는 같은 시기에 같은 소재로 쓴 작품으로 맞대결하기도 했다. 흥행으로는 대체로 라신의 승리였지만, 너무 많은 열정을 불태운 탓인가, 그는 극작을 일찍 놓아버렸다.

 

프랑스의 3대 작가라고 하면 몰리에르, 코르네유, 라신을 이르는데 유독 라신과 코르네유만이 비교대상이 된다. 몰리에르가 희극을 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기실 코르네유는 라신 이전의 극작가라 볼 수 있다. 오늘날에서는 두 사람을 같은 시기의 극작가라 보고 있지만, 당시에는 라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르 시드(1937)>를 발표해 사회적 주목, 논란, 비난을 한 번에 받았던 유명한, 당대 최고의 비극작가였다. 코르네유의 입장에서 보자면 라신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코르네유는 중산층 집안의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리 부유하지도 않은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지방 관청에서 법률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코르네유의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칠 작품 <르 시드>가 발표되었다. 대중은 열광했고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삼일치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학계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비난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삼일치를 지키지 않은 르 시드 따위 작정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저질스러운 희곡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결코 아무나 쓸 수 없는 작품이다. 어쨌거나 르 시드 논쟁은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고전주의 작품의 가이드를 세운 셈이 되었다. 수많은 담론이 생겨났고, 연극의 이론적 토양을 풍부하게 하였으며, 극작에 대한 방법론이 모색되었다. 코르네유 자신도 르 시드를 삼일치법 안에 펼치려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워낙 다양한 장르의 많은 작품을 썼고, 국내에는 희곡이 다 번역되어 있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개인적으로, 코르네유는 셰익스피어와 닮았다. 비극이라 하는 <르 시드>, <오라스(1640)>, <폴리윅트(1641)>를 읽어보면 다분히 희비극적이다. 바다 건너 셰익스피어는 삼일치법으로부터 자유로웠지만 아쉽게도 코르네유는 그렇지 못했다.

1640년대가 코르네유의 전성기였고 그 뒤로는 점점 쇠퇴하였다. 신고전주의 극작법이 자리잡아가면서 아마도 코르네유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르네유는 신고전주의 연극의 기틀을 잡은 극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삼일치의 법칙 속에 가둬지지 않았다. 더구나 신고전주의 기법의 완성형 작가인 라신에게 번번이 밀리면서 대중에게서도 잊혀져갔다.

 

1974년 마지막 비극 <쉬레나>를 끝으로 코르네유는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84년 사망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그를 추모하는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법칙의 시대

 

연극에 있어 삼일치법이란 세 가지 요소, 즉 시간, 공간, 사건을 일치시켜야 함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근거한 이 법칙은 활발했던 고대 그리스 연극을 되살리려고 하는 자들에게 있어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었다. 아름다움이란 우주적 질서 안에 존재한다는 그리스적 미학이 연극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신고전주의 연극에는 여러 가지 엄격한 법칙들이 존재한다.

 

모든 법칙은 데코룸(적합성) 아래 작동된다. 전후좌우 사정상 적합한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가를 따졌다. 이를 핍진성, 혹은 박진성이라 한다. 현실성이 없는 장면은 무대 바깥에서 해결을 했다. 예를 들자면 라신의 <페드르> 마지막 장면을 들 수 있다. 신하인 테라멘은 아테네 왕 테세우스에게 그의 아들이자 왕자인 히폴리투스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다. 히폴리투스는 아버지에 의해 추방형을 당하고 저주를 받아 바다괴물에게 처참하게 찢겨 죽는데 이는 다분히 신화적인 요소이며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그래서 테라멘의 장황한 보고로써 그 장면을 묘사한다.

 

또한 도덕적이어야 한다.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끝나야 하고, 사건은 완결되어야만 한다. 운명이란 신이 정한 질서이다. 운명과 제도에 반기를 드는 등장인물은 반드시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삼일치법인데, 시간의 일치란 것은 공연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1:1이란 뜻이다. 즉 현대 연극은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무한한 시간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상 장면 같은 경우는 과거를 다룬다. 현대 연극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다. 그러나 삼일치법 속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동일한 질량과 밀도를 지녀야 한다. 저녁식사 장면이 있다면 실제 저녁식사에 소요되는 시간만큼 장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장소의 일치는 극중의 모든 일들이 한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이른다. 현대 연극처럼 바다로, 도시로, 지하철로 필요에 따라 장소를 마구 옮길 수 없다는 말이다.

 

시간의 일치와 더불어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큼 연극의 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건의 일치란 하나의 연극은 하나의 사건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피소드식 구성은 허용되지 않으며, 극의 플롯과 세팅은 하나의 주요 사건을 위해 배치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도령과 춘향이가 사랑하고 이별하고 재회하는 데에 극을 집중시켜야지 부수적 인물인 방자와 향단이가 썸을 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무 엄격한 법칙들은 오히려 서로에게 데미지를 입힌다. 하나의 공간에서 사건을 만들기 위해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거나, 시간을 일치시키기 위해 무리한 사건 진행이 이뤄지기도 한다. <르 시드>에서는 사형을 받은 주인공 동 로드리고가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오는 덕분에 죄를 사면 받는다. 하루 안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재판을 거쳐 판결을 하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하고 돌아와서 왕의 용서를 받는다. 시간은 일치시켰지만 데코룸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라신의 희곡 특색은 굉장히 간단한 사건에 복잡한 갈등을 빚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코르네유는 유형적인 인물을 즐겨 썼다. 복잡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인물은 단순하다. 라신은 등장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나약한 인간을 드러내면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내리는 파멸을 인간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반면에 코르네유의 작품에는 위트가 흐르고,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영웅적 인간이 운명을 이겨내는 낭만주의적 기상이 돋보인다.

 

두 사람은 공히 신고전주의 연극의 시대를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극작가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변용을 이끌어냈으며 이후 발생한 낭만주의 연극의 모티브가 되었다. 또한 리얼리즘 시대를 이끌어내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김지용 극작·연출가

 

연출가이자 극작가. 극단<프로젝트팀 이틀>의 대표이자 현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 
수많은 상을 받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희곡집 <그 섬에서의 생존 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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